요즘 교회 활동에 대한 언론 기사를 접하면 혼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대형 교회 유명한 목사님들이 "교회가 정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도무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 목사님들의 정치 참여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위 목사님들이 이전과는 180도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상황이 달라지면 말씀도 달라지는 것인가? 이런 것도 상황에 따른 특별 계시인가? 1980년대에 이분들이 했던 말씀들을 똑똑히 기억한다. 이들은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교회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교회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단호히 배척했다. 이들이 인용했던 성경 구절을 아직도 기억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은 것은 하나님에게(마 22:21, 막 12:17, 눅 20:25).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
이랬던 목사님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주민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종용하고 나아가 새로운 기독교 정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무척 혼란스럽다. 하긴, 이분들은 민주화 운동을 정치 운동이라고 배격하면서도 독재자라고 비난받는 대통령이 주최하는 조찬 기도회에는 거리낌 없이 참석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교회가 정치에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논쟁적인 주제이지만, 교회가 현실 선거나 투표에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는가는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공직선거법과 주민투표법에 그 범위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정선거 문제로 시민혁명을 경험한 나라답게 공직선거법에는 선거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조문들이 아주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선거운동과 관련한 규정을 살펴보면, 선거운동의 기간이 엄격히 정해져 있고,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의 범위도 정해져 있으며, 선거운동의 방법도 시시콜콜하게 정해져 있다.
공직선거법에는 교회와 관련된 규정도 몇 개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교회 내의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하는 것이 금지고(제85조 제2항), 교회 내에서 명함 등 문서를 배포하는 행위도 금지며(제93조), 교인이 아닌 후보자로부터 헌금을 받는 것이 금지다(제112조). 주민투표법에도 종교적 지위를 이용하여 주민투표에 부당한 영향을 미친 자는 형사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8조).
위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후보자는 교회에서 선거운동을, 교회 구성원은 교회 활동을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된다. 이런 규정들에 비추어 최근 행해진 서울시 주민투표에서 목사들이 설교 시간에 주민투표의 참여를 독려하거나 교인들에게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낸 행위는 주민투표법에 위반되는 행위다.
그런데 교회는 위와 같은 공직선거법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세상 법이라고 하여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목사님의 개인적 가치관이나 사명감 또는 후보자와의 정리(情理)로 공직선거법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흐름도 보인다.
다음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내려진 법원 판결 사례다.
(1) 감리 교단 한 대형 교회 목사가 설교 시간에, "붉은 용의 세력과 친북 좌파세력을 막기 위해서는 좌우간 차떼기당이든 부동산 투기당이든 간에 예수님 잘 믿는 장로, 하나님 사랑하시는 장로가 당선되도록 기도하자"라고 말한 것이 교회 내에서의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판단, 유죄를 선고받음(서울북부지방법원 2008. 2. 15. 선고 2007고합388 판결).
(2) 어느 교회 교인이 교육감 후보자로 나서자 담임목사님이 주보와 인터넷의 교회 카페에 "이번에 OOO가 교육감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위하여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린 행위가 탈법에 의한 문서 배포 행위로 판단되어 유죄를 선고받음{광주고등법원(전주) 2010. 12. 4. 선고 2010노221 판결}. 다만 같은 주보에서 교인의 출마 선언 사실 및 선거사무소 개소 사실을 게재한 행위는 위법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받음.
(3)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이단인 가정평화당에 투표하지 말고 기독사랑실천당에 투표하라"라고 설교한 행위가 교회 내에서의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판단되어 유죄를 선고받음. 아울러 교회 내 방송 시설을 이용하여 위와 같은 취지의 광고를 한 것도 부정한 선거운동으로 판단받음(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2008. 10. 30.선고 2008고합130 판결).
(4) 후보자가 교회 마당에서 명함을 교부한 행위가 탈법에 의한 선거운동으로 판단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음(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2010. 7. 30. 선고 2010고합34 판결). 이 후보자는 다른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 교회에 감사 헌금 5만 원을 했는데, 이것 역시 유죄를 선고받음. 교회의 새신자실과 주차장에서 명함을 배포한 다른 후보자도 유죄를 선고받음(인천지방법원 2010. 9. 17. 선고 2010고합491 판결).
(5) 어느 교회의 목사가 'OOO 시장을 위한 예배 모임'을 호텔에서 개최하면서 그 모임에 참석한 목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그 시장에 대한 지지 유도 발언을 한 행위가 위법한 제삼자의 기부행위로 평가되어 유죄를 선고받음(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2010. 9. 2. 선고 2010고합78).
(6) 어느 교회의 목사가 전교인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우리 교회 신실한 일꾼 OOO 집사를 구의원으로 지지해 주십시오. 기호 7번임. OOO 목사", "투표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기호 7번 OOO 후보를 기억해 주십시오. OOO교회"라는 내용을 발송한 행위가 위법한 행위로 평가되어 유죄를 선고받음(광주지방법원 2010. 12. 1. 선고 2010고합488 판결).
(7) 후보자가 자신의 선거구 내 대형교회 목사의 출생지와 정치 성향을 분석하여 배포한 행위가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유죄를 선고받음(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10. 7. 15. 선고 2010고합146 판결).
(8) 다른 교회에 다니는 후보자가 평일 아침 교회에 들러 목사님에게 헌금한 행위가 공직 선거법에 의해 기부 행위로 판단, 후보자가 유죄를 선고받음(대구고등법원 2011. 2. 16. 선고 2010노581 판결).
(9) 어느 교회 목사가 후보자에게 접근, 복지관 등을 돌아다니며 레크리에이션 지도 등을 할 때 선거운동을 해 주기로 함. 대가로 돈을 받은 행위가 공직 선거법상 부정한 금품 수수 행위로 판단되어 유죄를 선고받음(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10. 8. 19. 선고 2010고합189 판결).
우리나라 국민은 선거에 매우 민감하다. 교회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선거법을 계속 위반할 경우 국민들은 교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할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교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필자는, 교회와 정치의 관계는 차치하고 최소한 교회와 선거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것을 호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