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며 개혁신학회(회장 김인환 목사)는 "칼빈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2009년 봄 학술 세미나'를 지난 3월 개최했다. 총신대학교에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는 모두 17명이 칼빈을 주제로 발제했다. 다음은 기동연 교수(고신대 신학대학원 구약신학)의 '칼빈의 구약 성경 해석 방법' 발제 전문.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 중에 한 명인 칼빈의 신학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기독교 강요에 잘 표현되어 있다. 기독교 강요는 교회를 위한 신학 교과서로 역사 속에 길이 남을 것이다. 기독교 강요에 더하여 칼빈은 또 다른 중요한 신앙의 유물을 교회에 남겨 주었다. 바로 그의 신구약 주석 책들이다. 칼빈의 주석 책들은 그의 신학을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해야 하는 목회자들에게 바람직한 성경 해석 방법론을 제시해 준다. 이 논문의 목적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주석들을 참고하여 그의 성경 해석 방법론을 살펴 보는 것이다. 칼빈에 관하여는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주제를 두고 오랫동안 연구해 왔고, 이들은 그의 성경해석 방법에 관한 연구도 예외 없이 진행하여 많은 논문과 책들을 남겼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문은 칼빈의 성경 해석학에 대한 독창적이고 새로운 것을 제시하기 보다는 칼빈 연구가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을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는데 무게 중심을 둘 것이다.
1. 인문주의 학자들의 영향과 성경의 영감론
칼빈의 구약 성경해석 방법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받은 인문주의 학자들의 영향과 그의 성경 영감론을 먼저 알아야 한다.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그가 대학 시절에 접한 인문주의자들의 고전 연구 방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칼빈은 1528년경에 대학 이전 과정을 마치고 오를레앙(Orlans)과 부르제(Bourges)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 시기의 법학 공부 방식은 이전의 법학 공부와 사뭇 달랐다. 이전에는 주로 이전 세대의 법률 해석가들의 다양한 해설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해, 칼빈 시대의 법학자들은 르네상스를 주도한 인문주의 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본문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과 본문의 문학적 특징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칼빈도 이런 영향을 받았다. 그가 아직 종교 개혁에 관심을 가지기 전인 대학시절에 쓴 세네카의 De Clementia에 대한 주석은 당대의 인문주의자들의 해석 방법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주석에서 칼빈은 세네카의 책의 내용을 구조와 단어 그리고 관용어들을 분석하며 세네카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이후 1530년대 초에 칼빈은 회심의 과정을 겪게 되고, 참된 신앙을 추구하기 위해 세속적인 학문에 대한 관심을 끊는다. 하지만 칼빈은 고전 해석을 통해 배운 방법만큼은 버리지 않고 성경 해석에 적용하고 있다. 인문주의자들의 영향은 성경 해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16세기 이전의 성경 주석가들이 역사적 배경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주로 교리와 전통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거나 아니면 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칼빈을 비롯하여 인문주의자들의 고전 해석 방법에 영향을 받은 성경 해석가들은 종교개혁자들의 모토였던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방법론을 가지게 되었다.
성경 기록에서 성경 기록자의 역할에 대한 이해도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칼빈에 의하면, 우주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 본성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을 주었고 그리고 우주만물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였지만, 타락의 결과로 이런 본성적인 신 존재 인식 기능은 전적을 훼손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은 인간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고 구원받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칼빈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께 있고, 교회는 성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딤후 3:16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기록한 기록자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칼빈은 성경의 신적 기원을 철저하게 확신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성경 영감론은 결코 기계적 영감론이 아니고 축자적 영감론이다. 시편 87:3 주석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선지자가 의도하는 것, 또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성령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위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칼빈은 선지자의 의도와 성령의 목적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데이빗 푸켓에 의하면 칼빈은 성경 기록에서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뜻과 선지자의 생각과 말은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둘 사이를 구별할 수 없다고 여겼다. 칼빈은 성령께서 성경을 기록할 때 성경 기록자의 지적인 능력과 개인적인 성격과 문화적 배경을 사용하였다고 믿고 있다. 시편 88:5의 주석에서 칼빈은 시편 기자의 표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선지자가 무식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눈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환난으로 인하여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혼돈과 개념을 말한다고 본다.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사람들일지라도 슬픔이 자신을 짓누르려 할 때 어리둥절하여 바보처럼 되어 지각없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것을 피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칼빈은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할 때 저자의 슬픔과 그로 인한 심리적 상태까지도 사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 성경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성경 저자의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2. 신약의 가이드
칼빈은 구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칼빈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 대해 재세례파와 그리고 루터와 다른 입장을 가졌다. 칼빈은 구약과 신약이 모두 그리스도에게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구약은 그리스도의 오실 것에 대해 말씀하였고, 신약은 교회들이 이미 오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게 한다는 점에서 둘 사이에는 매우 강렬한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칼빈은 신약과 구약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 강요 2.11.1-14에서 칼빈은 둘 사이의 다섯 가지 차이점을 말한다.
1) 구약은 땅의 약속과 유익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의 소망과 유익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2) 구약의 진리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위해 이미지와 의식들로 전달되었다.
3) 구약은 문자적이고 신약은 영적이다.
4) 구약은 속박이고 신약은 자유이다.
5) 구약은 한 민족과 관련 있지만, 신약은 모든 민족과 관계 있다.
이런 차이점이 있지만 칼빈은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다. 그래서 출애굽기~신명기의 주석에서 칼빈은 각 율법의 본질과 정신을 신약의 교회들에게 적용하기를 쉬지 않는다. 하지만 칼빈은 구약의 메시지를 이해할 때에는 신약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칼빈이 염두에 두고 있는 신약의 안내 원칙 두 가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할 수 있다. 첫째, 칼빈이 요한복음 5:39주석에서 강조한 것처럼 구약 해석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고, 이를 놓치면 참된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원칙이다.
“성경은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누구든지 이 목적에서 벗어나면, 비록 그가 평생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결코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
이 같은 칼빈의 구약 해석 원칙은 그의 구약 주석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창세기 2:2를 주석하면서 칼빈은 그리스도가 자신과 하나님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일해 왔다고 한 말은 진실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하지만 칼빈은 구약 성경에서 맹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창세기 1:1 주석에서 “태초에”를 “그리스도의 태초”로 해석하려는 주석가들의 행위를 경솔하다고 비판하며, 엘로힘을 삼위 일체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난색을 표시한다. 칼빈이 그리스도를 찾는 구약 성경은 주로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그리스도와 연결시켰던 본문들과 초대 교회 때부터 기독론의 관점에서 해석 했던 본문들이다. 하지만 칼빈은 이런 본문들 조차도 주석가들이 메시아 본문으로 당연한 듯이 해석하는 안이한 태도를 비판한다. 이사야 7:14의 주석에서 칼빈은 당대의 주석가들이 이 본문을 임마누엘의 동정녀 탄생으로 너무 당연한 듯이 해석하느라 유대인들의 반박에 속수무책인 점을 비판한다. 칼빈은 우선 유대인 주석가들이 이사야 7장의 메시아 해석은 전쟁으로부터 구원이라는 이사야 7장의 배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박을 소개한다. 이어서 칼빈은 메시아 해석의 정당성을 논증해 나간다. 칼빈에 의하면 아하스의 거부가 하나님의 구원을 방해하고 있지만,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은 방해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메시아를 마침내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약속의 징표를 주고 있음을 본문의 전후 문맥을 통해 증명해 나간다. 이처럼 칼빈은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해석의 핵심 목표라고 하면서도 신중하고 객관적인 주석을 통해 논증하려고 노력하였다.
둘째 신약의 가이드 원칙은 율법을 해석할 때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 사용한 해석 방법론을 따르는 것이다. 즉 칼빈은 사도들의 예표론적 해석과 그리스도의 본질적 포괄적 해석을 따르고 있다. 칼빈은 출애굽기 16:4 주석에서 만나를 그리스도의 몸을 예표한다고 한다. 칼빈은 바울이 만나를 영적인 양식이라고 했던 것을 당연히 따르고 있다. 출애굽기 17:7의 주석에서 칼빈은 모세가 친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하며, 그 물에서 나온 물을 성찬식 포도주 잔과 비교하고 있다. 이처럼 칼빈은 구약의 중요한 사건들을 예표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예수님의 해석 방법을 따라서 구약의 각 율법의 본질적인 면을 밝히고 이를 포괄적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칼빈은 제 6계명을 주석하면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지 살인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차원에서 이웃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과 해악을 금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긍정적인 차원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칼빈은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마태복음 5:22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그(그리스도)는 어떤 사람들이 무지하게 상상하는 것처럼 그의 아버지를 비난하기 위해 거기 있지 않았고, 대신에 율법의 외적인 것과, 속되게 말해서, 껍데기만 집착하는 율법 해석가들의 어리석음과 완고함을 보여 주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교리는 그의 본성에 대한 적합한 고찰을 통해 판단되어야 한다.”
칼빈은 예수님이 마태복음 5:22에서 제 6계명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과 동일하게 해석하며 신명기 20-25장과 레위기 19장을 비롯한 율법들을 통해 제 6계명을 보충시킨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제 7계명이 간통 한 가지만 금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성적인 타락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자신의 해석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 만약 최고의 율법 해석가인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하나님의 율법이 도둑질뿐만 아니라 간음에 의해서 침해되었다고 선언한다면, 우리는 확실하게 이 계명에 전체적인 종류가 하나의 종 아래 내포되어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칼빈은 제 7계명의 포괄적인 적용의 근거를 그리스도와 사도에게서 찾고 있다. 그의 제 7계명 주석에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칼빈은 이를 마태복음 5:27-32에 있는 예수님의 간음에 관한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처럼 칼빈의 구약 해석은 신약의 가이드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
3. 칼빈의 구약 성경 해석
칼빈이 구약 성경 해석에서 신약의 가이드를 받았다고 해서 그가 무작정 신약의 관점에서 구약을 해석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칼빈의 구약 주석을 살펴보면, 그는 아주 분명한 해석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칼빈의 구약 해석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그가 가진 기본적인 주석 원칙을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칼빈은 그의 첫 번째 주석인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시몬 그리나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그의 주석 원칙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둘은 간단 명료성이 주석가의 주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설명하려고 하는 저자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거의 그의 유일한 임무이기 때문에 그가 그의 독자들을 저자의 의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만큼 그는 자신의 목적을 벗어나게 되고 최소한 자신의 한계 밖으로 이탈하게 된다.”
이 말에서 칼빈의 주석 원칙은 간단 명료성이다. 그가 말하는 간단 명료성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칼빈의 간단 명료성을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멜랑크톤처럼 성경 본문의 특정한 이슈에 집중하면 전반적인 본문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부처처럼 박학다식한 사람들이 늘어놓은 장황한 설명은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거나 평범한 독자들이 본문의 핵심을 파악하기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칼빈은 이 서문에서 간단 명료성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저자의 의도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칼빈이 어떻게 저자의 의도를 찾았고 본문의 의미를 어떻게 찾았는지에 대해서는 결국 그의 주석을 면밀히 살핌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칼빈은 많은 주석가들이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석상의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였다. 주석에서 그는 한 단어의 여러 개념들 중에서 본문에 적절한 한 개념를 선택할 때 왜 그 개념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항상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종종 왜 그 개념을 선택했는지 논의하며,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문법, 어원, 성경의 관례, 랍비들의 견해, 본문의 문맥,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의지하여 단어와 본문의 의미를 결정한다.
3.1. 히브리어 문법
칼빈은 본문을 번역하고 해석할 때 히브리어 문법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창세기 3:5 주석에서 칼빈은 “하나님과 같이”를 “Ye shall be as gods”으로 번역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이(NRS, NIV) 한글 성경처럼 “You shall be as God”로 번역하고 있는데 반해 칼빈은 창세기 3:5의 '케엘로힘'을 단수 취급하여 하나님으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복수 취급하여 신들로 번역하였으며, 더 나아가 이를 “Ye shall be like angels”로도 번역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사탄이 하와에게 유혹하며 말한 내용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신들처럼 혹은 천사들처럼 선악을 구별하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칼빈이 이렇게 해석한 이유는 '케엘로힘'을 수식하는 분사 '요드에'(알다)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기 때문에 '엘로힘'은 장엄복수가 아니라 복수형 명사로 해석해야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면에 칼빈은 창세기 3:5의 첫째 문장 “키 요데아 엘로힘”(왜냐하면 하나님이 알았기 때문이다)에서 주어 '엘로힘'(하나님)이 동사 '야다'(알다)의 분사 단수 형 '요데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엘로힘을 장엄복수로 해석하여 “For God doth know”로 해석하였다. 즉 칼빈은 히브리어 문법에 따라 엘로힘이 단수 동사를 취하면 장엄복수로 해석하고 복수 동사를 취하면 명사 복수형태로 여기고 해석하였다.
히브리어 문법을 고려한 주석을 학개 2:7에서도 볼 수 있다. 학개 2:7의 “우바우 헴다트 콜-학고임”을 개역 개정 성경은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또는 영어 성경은 “the desire of all nations shall come”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 문장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여 보배를 메시아 예수님으로 여겼다. 칼빈은 이 부분을 다른 영어 성경 번역처럼 “the desire of all nations shall come”으로 번역하였지만, 그의 주석에서 이를 “the nations shall not come empty, but shall gather all their treasures to be a holy oblation to God”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즉 동사 '바우'(가져 오다)가 완료형 복수이기 때문에 '헴다트'(보배)가 주어가 아니고 선행하는 문장의 '하고임'(민족들)이 주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칼빈이 히브리어 문법보다 전통적인 기독론적 견해를 받아 들여 “The desire of all nations”를 동사 '바우'의 주어로 여기고 그리스도에 대한 대망으로 해석하지만, 그가 히브리어 문법을 고려하여 주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칼빈은 본문의 문제점을 문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때 본문 비평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출애굽기 14:1 주석에서 칼빈은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에 도달했을 때에 맞닥트렸던 장소 하히로트tryxh의 지명의 의미를 70인역이 ‘골짜기의 입’으로 번역한 이유를 추정하면서 그의 히브리어 문법 지식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하히로트tryxh의 힐ryx 부분이 원래 홀rwx(굴, 구멍)이며 문자 와우w는 종종 요드y로 바뀌어지고, 명사 복수에서 성의 변화는 히브리어에서 자주 있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칼빈은 하히로트가 산들의 입구로 해석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본문 비평을 시도하고 있다. 출애굽기 14:1의 주석에서 하히로트twryxh의 헤트x는 헤h와 비슷하기 때문에 일어난 필사자의 오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칼빈은 지명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문법과 본문 비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예들은 칼빈이 자신의 주석에서 히브리어 문법을 통해 합리적으로 본문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해석하려고 기울인 노력을 보여준다.
3.2. 어원
칼빈은 단어의 의미를 결정할 때 어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출애굽기 6:3 주석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신명 YHWH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어원에 전전으로 의존하고 있다. 칼빈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신명 YHWH를 소리 내어 읽지 않고 “아도나이”로 읽는 전통을 어리서석은 미신이라고 비판하며, 동시에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신명은 문법 규칙에 따라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로 표현해 낼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칼빈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명은 동사 하야hyh나 하봐hwh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칼빈은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왜냐하면 그것의 어원은, 모든가 하나님이 그 저자라고 고백하는데, 백개의 규칙보다 내게는 더 중요하다.”
칼빈에게 어원은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칼빈은 어원의 기원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칼빈은 한 단어의 어원을 확신할 수 없을 때, 당대의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을 익명으로 제시한다. 예를 들면, 창세기 6:4을 주석하면서 칼빈은 네피림이 동사 나팔에서 기원하였지만 그 어원에 대해 학자들이 의견 일치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익명의 문법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1) 그들의 신장이 정상적인 인간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2) 그들의 거구를 보고 사람들이 얼굴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3) 그들의 덩치에 두려움을 느껴 모두 땅에 엎드렸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칼빈은 창세기 6:4의 사람들에게 네피림이라는 말을 붙이게 된 원인을 어원으로 보고 있다. 위의 세가지 주장을 제시한 후 칼빈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가 따르는 견해에 따르면, 네피림이란 말은 창세기 6:4의 사람들의 행동과 폭포수 또는 폭풍 사이의 유사성 때문에 붙여졌다고 생각한다. 즉 칼빈은 마치 폭풍과 폭포수가 거칠게 땅에 떨어져 들판을 파괴하고 황폐하게 하듯이 네피림들은 강도 짓을 통해 세상에 파괴와 파멸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칼빈은 네피림을 거대한 신장을 가진 자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건장한 사람들로 생각했다. 이처럼 칼빈은 어원을 찾아서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어원이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칼빈은 유대인 주석가들의 해석을 참고하곤 했다.
3.3. 유대인 주석가들과 칼빈의 해석
칼빈은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기 어려울 때 종종 유대인 주석가들의 해석을 따른다. 이사야 41:1를 주석하면서 칼빈은 “이임”(섬들아)의 의미를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면서, 그 이유로 유대인들이 이들 나라를 “섬들”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칼빈이 유대인 주석가들의 해석을 자주 참고하는 이유는 그들이 히브리어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칼빈의 시편 8:5 주석은 그가 유대인 주석가들을 어느 정도로 존중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시편 8:5의 첫 문장 '와테하스레후 메아트 메엘로힘'(그를 엘로힘보다 조금 못하게 하였나이다)에서 한글 성경이 '엘로힘'을 “하나님보다”로 번역하고 있는데 반해 70인역은 “천사들보다”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칼빈은 유대인 주석가들에 의해 보편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는 이유로 “하나님보다”로 해석한다. 칼빈은 히브리서 2:7이 시편 8:5을 인용하면서 “하나님 보다”가 아니라 “천사들보다”로 번역하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그는 이를 사도들이 성경을 인용할 때 다소 자유롭게 인용하는 전통으로 돌린다. 칼빈은 사도들의 인용 때문에 성경의 원래 의미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칼빈이 유대인 주석가들의 견해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런 그의 태도 때문에 루터를 따르는 개혁가들은 그를 매우 비판하여 유대주의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칼빈은 유대인 주석가들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으면 자신의 해석을 제시한다. 창세기 1:14에서 칼빈은 유대인 주석가들이 일반적으로 '모아딤'을 그들의 절기들로 이해한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칼빈은 이를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고 사계절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한다. 출애굽기 1:1 주석에서 유대인 주석가들이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포함시키는 것을 두고 “적절치 않다”고 배격한다. 그리고 출애굽기 1:7 주석에서 유대인 주석가들이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육하고 번성케 함으로 인해 자녀를 한번에 4명씩 출산하였다고 한다. 칼빈은 이에 대해 “상상해서 만들어 낸 것을 사실이라고 억지를 부린다”고 외면한다. 칼빈은 이사야 7:14의 '알마'를 처녀로 해석하지 않고 젊은 여자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대인 주석가들을 비판한다. 칼빈은 '알마'를 처녀로 해석하지 않으면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아기 탄생을 징조나 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선지자의 말을 경멸할 것이기 때문에 처녀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며 유대인들 주석가들의 해석을 배척한다. 전통적으로 메시아 예언으로 여기는 본문에 대해 유대인 주석가들이 다른 해석을 제시하면, 칼빈은 이들의 주장을 특별히 강력하게 논박하곤 한다.
3.4. 문학적 배경
칼빈은 단어의 의미를 결정할 때 어원과 유대인들의 해석만 고려한 것이 아니고 문학적 배경을 충분히 고려하였다. 우선 전후 문맥을 고려한 해석의 예를 이사야 41:14에서 엿볼 수 있다. 이사야 41:14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표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알-틸이 토라아트 야곱 메테 이스라엘”(개역 개정 –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개역 개정은 '메테'를 “사람들”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칼빈은 이렇게 번역한 당대의 주석가들을 비판하며 이를 “dead”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칼빈은 “사람”으로 번역하는 것은 본문의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칼빈에 의하면 “메테 이스라엘”(죽은 자들 같은 이스라엘)은 “토라아트 야곱”(버러지 같은 야곱)의 반복적인 표현이며, 반복은 유대인 작가들 사이에 아주 일상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칼빈이 유대인 주석가들의 주장을 따르는 듯 하지만, 사실상 칼빈은 이 부분을 히브리어의 대구법적 표현으로 이해하고 앞문장의 표현과 조화시켜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다. 즉 칼빈은 전후 문맥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더 나아가 칼빈은 한 단어를 해석할 때 그 단어가 다른 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살피면서 그 의미를 확정하고 있다. 창세기 15:6을 예로 들어 보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베헤에멘 바이와 와얔쉐베하 로 체다카)
칼빈은 이 구절에서 모세가 첫 문장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칭찬하고 있고, 둘째 문장을 통해 모세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칼빈은 아브라함의 의는 하나님의 귀여(impression)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칼빈은 동사 하삽bvx을 하나님의 판단에 의한 귀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여기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하삽bvx(여기다)을 다른 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들을 제시한다. 먼저 칼빈은 창세기 15:6 둘째 문장의 동사 하삽bvx과 명사 '츠다카'(의)가 함께 사용된 시편 106:31을 통해 설명한다. 시편 106:27-30에서는 민수기 25장에서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브올의 아들 발람의 유혹 때문에 범죄한 자들을 징벌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평화의 언약을 준 것을 언급한 후, 31절에서 그 일이 비느하스의 의로 여겨졌다고 한다. 칼빈에 의하면 비느하스의 의는 하나님의 판단에 의해 귀여 된 것이다. 이어서 칼빈은 의와 반대되는 개념인 죄 또는 불의와 관련된 표현이 동사 하삽bvx과 함께 사용된 용례를 통해 논증해 나간다. 레위기 7:18의 메시지를 칼빈은 잘못 이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
“레위기 7:18에서 속죄가 되었을 때 죄는 사람에게 전가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칼빈은 속죄를 받고 나면 죄가 사람에게 전가 되지 않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판단에 의한 된다고 말한다. 이에 더해 칼빈은 사무엘하 19:19과 열왕기하 12:15를 예로 든 후 모세의 의도를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죄가 전가된 자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이해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의를 전가한자들은 그에 의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의의 전가에 의해 의로운 사람의 수와 반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칼빈은 한 단어의 의미를 구약 성경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통해 정의 하고 있다. 동일한 단어뿐만 아니라 반의어의 용례까지 살펴 한 단어의 의미를 밝히는 칼빈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칼빈이 문맥을 강조한 이유는 잘못된 해석을 통해 교회에게 그릇된 메시지를 강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의 이사야 1:2 주석은 이러한 예를 단적으로 엿 볼 수 있게 해 준다. “Hear, O heavens and give ear, O earth” 문장을 “for the Lord hath spoken”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여기면서 하나님이 입을 열자마자 모두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처럼 말하려고 하는 주석가들을 비판하면서, 칼빈은 문맥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But the context demands that we connect the words in a different manner, so as to make the word hear to refer, not in a general manner to any discourse whatever, but only to the expostulation which immediately follows. The meaning therefore is Hear the complaint which the Lord brings forward, I have nourished and brought up children, &c.
칼빈은 문맥을 떠나 임의로 본문의 의미를 일반화하여 성도들에게 말씀을 억지로 강요하거나 그릇된 적용을 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저자의 의미를 바르게 알려 주지 못하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 간단 명료성을 강조했던 것에서도 볼 수 있었다.
3.5. 역사적 배경
푸켓에 의하면, 칼빈은 본문을 직접적인 문학적 배경으로부터 떼내어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본문이 처음 기록된 시대적 배경과 오리지널 청중을 무시하고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칼빈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 특히 포로 후기 시대의 메소포타미아 역사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스가랴 1장 주석에는 고레스와 캄비세스를 언급하고 그리고 캄비세스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마기(the Magi)를 언급하고 있다. 학개 1장 주석 시작 부분에서 칼빈은 고레스에서 캄비세스와 다리오에 이르기 까지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쏟아 놓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헤르도투스의 역사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칼빈은 헤르도투스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가 헤르도투스의 역사서의 내용을 매우 잘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서 주석에서는 크세노폰의 이름을 자주 언급하며 그의 글을 인유하고 있다. 칼빈은 마카비를 비롯한 구약의 외경들을 통해 신구약 중간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칼빈은 역사를 알고 주저리 주저리 그 내용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려하며 본문을 해석하곤 한다. 예레미야 애가 서문에서 칼빈은 예레미야 애가를 요시야의 죽음 때문에 예레미야가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제롬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칼빈은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 간 후에 기록되었다고 결론 짓는다. 왜 칼빈은 제롬을 비난하고 기록 연대를 제시했을까? 정확한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은 예레미야 애가 서문을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우리는 반드시 그 선지자가 그 책을 기록한 시기와 그리고 저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연구해야 한다.”
칼빈이 역사적 배경에 근거한 해석을 강조한 흔적을 스가랴 1:11 주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슥 1:11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칼빈은 붉은 말을 탄 사람이 여호와의 천사에게 한 이 말에 대해 다양한 주석가들이 음절 하나 하나를 살피며 미숙한 해석을 내 놓는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가지를 유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선지자의 의도에 주목할 것, 2) 그 시대의 상황을 고려할 것, 그리고 3) 사인과 사인의 의도 사이의 유사성을 살필 것. ‘그 시대의 상황’이란 바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라는 것이다. 칼빈은 이 본문이 다음과 같은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적들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여전히 적대적이고 힘들게 만드는 동안 다른 모든 사람들이 평안과고요함을 즐기는 것이 당신의 뜻입니까?”
스가랴 2:6 주석에서도 칼빈이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칼빈은 스가랴 2:6을 주석하면서 스가랴 선지자의 의도를 더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칼빈은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피할지어다”의 대상은 고레스가 칙령을 내려 성전 재건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한 것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 보면서 예루살렘에 되돌아 가기 보다는 바벨론 땅에 평안하게 정착하기를 원했던 유대인들이라고 한다. 칼빈은 스가랴 2:6의 메시지의 의도는 바로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라고 한다.
선지자들의 예언과 관련하여 역사는 칼빈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칼빈은 과거 역사 속에 성취된 선지자의 예언을 알레고리나 모형론적으로 해석하여 신약 교회에 적용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칼빈은 다니엘 8:23-25의 헬라 제국 마지막 때에 일어날 한 왕을 역사적으로 해석하여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를 가리키며, 그에 의한 만행을 기원전 2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이어서 칼빈은 다니엘 8:23-25의 안티오커스를 적그리스도로 해석하는 당대의 주석가들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 이유를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It would please me better to see anyone wishing to adapt this prophecy to the present use of the Church, and to apply to Antichrist by analogy what is said of Antiochus. … but … it seems to me far too frivolous to search for allegories. We should be content with true simplicity, and transfer to ourselves whatever occurred to the ancient people.”
칼빈은 과거 역사 속에 성취된 선지자들의 예언을 유사성이란 점에서 적그리스도에게 적용할 수 있지만, 알레고리로 해석하여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경솔한 행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역사적 배경과 관련하여 칼빈은 우리 자신이 본문을 단순하게 바라 보는 것에 만족하고 과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옛 백성들에게 일어난 것을 진실되게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한다. 그 이상으로 해석하여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를 칼빈은 베드로전서 2:1의 거짓 선생과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글을 맺으면서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론을 살피면서 그 동안 우리는 그를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든지 문자적 의미를 찾는다든지 그리고 신약을 통해 구약을 해석한다라는 모든 칼빈의 해석 방법론과 관련된 표현들이 그의 해석 방법론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이 그의 성경 해석 방법론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칼빈은 본문의 의미와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문법적인 특징을 고찰하면서 구문론적 의미를 찾으려 했고, 어원을 통한 의미론적(semantic) 접근을 하였고, 본문의 문맥과 성경의 용례들을 살피며(co-text), 그리고 역사적 상황(historical context)을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유대인 주석가들과 당대의 주석가들의 해석을 참고하며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다. 심지어는 청중들에게 주석가들의 글의 진의가 잘못 전달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노력까지 기울였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현대 구약 학자들이 독자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현대의 설교가들이 설교 준비를 너무 소홀하게 한다는 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성경 연구를 위한 도구들이 턱없이 빈약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놀라운 주석과 설교를 하였다. 반면에 우리는 너무 좋은 성경 해석 도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고 그리고 게으름에 쫓기느라 성경을 바르게 연구하고 설교하지 못하고 있다. 칼빈만큼 주석하고 설교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를 본받으려는 노력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